국립 경주 박물관,마케팅,브랜드,브랜드마케팅,기업,서비스마케팅,글로벌,경영,시장,사례,swot,stp,4p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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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경주 박물관
분 류박물관소 재 지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답사 포인트
1. 신라의 불교문화와 고분문화 관련 유물을 찾아보자.
2. 전시된 유물들을 통해 당시 신라인의 생활 모습을 상상해보자.
Ⅰ. 서론
국립경주박물관은 본래 광복 이전에 경주고적보존회라는 단체가 1913년 동부동에 있는 조선시대 경주부의 관아 건물을 이용하여 조그만 진열관 형태로 운영된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1926년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으로 바뀌어 광복 전까지 유지되다가 광복 직후인 1945년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정식 개관하였다. 이후 전시에 보다 넓은 공간이 필요하게 되어 1975년 현재 위치인 인왕동에 새로 건물을 짓고 박물관 전체를 옮기게 된다. 이 때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승격되어 명실 신라고도 경주를 대표하는 문화기관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982년 안압지 출토품을 전시하기 위한 제2별관(안압지관)을 지었고 2002년에는 미술관...
국립 경주 박물관
분 류
박물관
소 재 지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답사 포인트
1. 신라의 불교문화와 고분문화 관련 유물을 찾아보자.
2. 전시된 유물들을 통해 당시 신라인의 생활 모습을 상상해보자.
Ⅰ. 서론
국립경주박물관은 본래 광복 이전에 경주고적보존회라는 단체가 1913년 동부동에 있는 조선시대 경주부의 관아 건물을 이용하여 조그만 진열관 형태로 운영된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1926년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으로 바뀌어 광복 전까지 유지되다가 광복 직후인 1945년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정식 개관하였다. 이후 전시에 보다 넓은 공간이 필요하게 되어 1975년 현재 위치인 인왕동에 새로 건물을 짓고 박물관 전체를 옮기게 된다. 이 때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승격되어 명실 신라고도 경주를 대표하는 문화기관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982년 안압지 출토품을 전시하기 위한 제2별관(안압지관)을 지었고 2002년에는 미술관을 신축하였다.
따라서 국립경주박물관은 현재 3개의 전통양식을 본 뜬 고고관, 미술관, 안압지관 3동을 상설전시관으로 운영하고 있고 그 외 옥외전시관과 특별전시관, 어린이 박물관으로 구성되어있다. 2012년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는 성덕대왕신종을 비롯한 국보 13점, 보물 30점을 비롯한 8만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우리는 국립경주박물관 견학을 통해 앞으로 2박 3일간 공부할 답사지와 그와 관련된 유물들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고 전시된 유물들을 통해 당시 신라인들의 생활 모습을 유추해보고 이를 불교문화와 고분문화를 연결시켜 생각해보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Ⅱ. 본론
1. 고고관
1) 선사·원삼국실(선사시대~4세기)
경주를 비롯한 영남지방에서는 후기 구석기시대를 시작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 유물인 빗살무늬토기, 청동기 시대의 청동거울, 철기갑옷 등의 유물들의 발견으로 선사시대와 원삼국 시대에 이 지역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유물들은 주로 무덤에 매장되었던 것으로 신석기 시대의 조개더미 무덤에서부터 고인돌, 널무덤1) 그리고 덧널무덤2) 등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고고관의 제1전시실인 선사·원삼국실에서는 경주와 주변 일대에서 출토된 유물이 시대별 종류별로 전시되어 있다.
? 닻모양 청동방울
경주 입실리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방울이다. 기원전 2세기의 철기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닻모양 청동방울은 소유자인 당시 지배자가 정치적인 힘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제의를 주관하는 제사장으로서 종교적인 힘 또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 판갑옷
경주 구정동에서 출토된 이 갑옷은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갑옷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긴 네모꼴의 쇠판을 세로로 이어 만든 한반도 특유의 판갑옷이다. 이 갑옷은 경주 구정동 덧널무덤의 껴묻거리 중 하나였다. 4세기경의 무덤인 이 경주 구정동 덧널무덤은 기존의 덧널무덤에 비해 매우 긴 무덤으로 갑옷과 함께 다량의 철기가 껴묻거리로 발견되었다. 이것은 당시 주변지역을 아우르는 통치자로 거듭나고 있었던 사로국 지배자의 권력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3)
2) 신라Ⅰ실(4세기~6세기)
고대왕국 신라는 진한 12개의 작은 소국들이 경주 지역의 사로국을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고대국가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4세기 중반에는 마립간이 등장하면서 왕에 버금가는 권력자가 다스리는 나라가 되었고 점차 강한 국력을 다져가기 시작했다. 4세기 후반부터 6세기전반 사이에 등장한 신라의 황금문화유산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신라의 수많은 황금문화유산은 대부분 돌무지덧널무덤4)에서 발견되었는데 돌무지 덧널무덤은 신라의 독특한 무덤양식으로 황남대총, 천마총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쉽게 도굴할 수 없는 돌무지 덧널무덤의 특이한 무덤구조덕분에 수많은 신라의 유물들이 매장 당시 모습 그대로 발견될 수 있었다고 한다. 신라Ⅰ실에서는 이러한 돌무지 덧널무덤 내부의 복원 전시와 여러 가지 출토유물을 확인할 수 있다.
① 천마총 금관
천마총 금관
이것은 1975년 발굴된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관이다. 천마총은 돌무지 덧널무덤으로 무덤 안에서 하늘을 나는 말이 그려진 말다래5)가 출토되었기 때문에 ‘천마총’이라고 불린다. 천마총 금관은 현재까지 발견된 신라 금관 중에 가장 크고 화려하며 디자인 적으로도 완성도가 가장 높다. 넓은 관테에 3개의 맞가지모양 세움장식과 2개의 엇가지모양 세움장식을 접합하고 전면에 곱은 옥과 달개장식을 드리웠다.6) 신라는 지배자의 상징으로 금동관을 활용하였는데 경주 왕족에서부터 지방 수장까지 금관을 소유할 수 있었다. 또한 신라의 중앙정부는 금동관을 하사하면서 지방의 수장들을 회유하고 견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금관과 같은 신라의 화려한 위세품은 5세기 대 가장 화려하게 빛을 냈고 불교를 공인한 6세기 이후에는 점차 쇠퇴하였다.
② 유리잔
유리잔은 황남대총, 금관총, 천마총, 서봉총 등 경주지역의 왕릉 급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고대에는 유리 제작기술이 발달하지 못해서 금이나 은과 같은 귀중품의 일종으로 취급되었다. 유리 제품은 신라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하기도 하였지만,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봉수병과 유리잔의 사례와 같이 유라시아 대륙과 중국 등을 거쳐 수입된 것도 상당수 있었다. 이러한 유리그릇들은 로마유리라고 불리는데 지중해 연안에서 출발하여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와 중국을 거쳐 신라로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으로 신라가 당시 활발한 대외교류를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7)
토우장식 항아리
③ 토우장식 항아리
경주 미추왕릉 지구에서 1973년 출토된 5세기경의 토우장식 항아리이다. 목긴항아리에 사람과 자연의 생명체를 주제로 한 다양한 형상의 토우를 부착하여 최대의 장식효과를 낸 신라의 가장 대표적인 토우장식항아리이다. 항아리의 목과 어깨부분에는 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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