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자료 제주의 역사와 문화 - 삼양동 선사 유적지 답사 보고서 레포트
사회과학 자료 제주의 역사와 문화 - 삼양동 선사 유적지 답사 보고서
[사회과학]제주의 역사와 문화 - 삼양동 선사 유적지 답사 보고서
제주의 역사와 문화 - 삼양동 선사 유적지 답사 보고서
0000년 00월 00일 0요일 오늘은 주말을 이용하여 답사가기로 결정 했다. 답사 장소는 평소에 생각해 두었던 삼양동에 위치한 선사 유적지이다. 이 곳은 내가 어렸을 적에 자랐던 곳이고 동네 친구들과 말썽도 많이 피고 온갖 놀이를 다 해본 추억이 있는 곳이다. 그 때는 지금만큼 개발이 안되어 있고 주변이 온통 밭과 들판이여서 우리에게는 더없이 좋은 놀이터 장소였다. 실제로 동네친구들과 물이 안고인 큰 웅덩이에 나무와 볏집 등을 가지고 일명 우리 나름의 `본부`라는 명칭을 가지고 우리만의 정말 안락하고 편안한 공간 또는 영역을 가지는 움집을 만들면서 놀기도 하였다. 그 때 당시에는 움집이라는 말을 몰랐다. 나중에 학교에 역사를 배우면서 알게 되었다. 지금 이렇게 대학생이 되고 다시 이 곳을 찾게 되어 정말 감회가 새롭고 옛 추억들을 생각나게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추억이 있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은 원당봉이다. 원당봉안에 원당사라는 절이 있는데 솔직히 이번 과목을 수강하면서 원당사가 이렇게 역사 깊은 곳인지 처음 알았다. 어머니가 워낙 오름 그리고 산을 좋아해서 거의 매일 같이 어머니를 따라 다녔던 기억이 난다. 원당봉에 올라가면 정말 많은 것을 볼 수가 있다. 넓은 바다와 그리고 저 반대편에 있는 별도봉, 사라봉이 보이고 한라산도 한 눈에 훤히 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삼양동을 찾았을 때 원당봉은 다녀가지 못한게 너무 아쉬웠다.
먼저 발 길이 닿은 곳은 매표소를 지나 전시관이다. 내가 좀 일찍와서 그런지 몰라도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한참 전시관을 둘러보다가 초등학생 4명이 같이 전시관을 구경하러 들어오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나의 모습과 유적지가 들어간 사진이 필요해서 초등학생 중 한명에게 부탁을 했다. 그리고 나도 초등학생 4명에게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리고 나서 좀 놀라운 일이 있었는데 내가 그 4명에 물었던 것이 `학교에서 숙제 냈구나` 이렇게 물었는데 자기네들은 `유적지 구경하고 싶어서 왔어요`라고 묻는 것이였다. 내가 어렸을 적 비교해 보면 내 자신이 참 창피하다는 것을 느꼈다. 요즘은 더 어린이들이 주말을 이용하여 더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을텐데 이렇게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친구들과 이 곳을 방문한는 모습을 보면서 참 기특하고 보기가 좋았다.
내가 처음 접한 것은 선사인들의 생활터전인 움집이었다. 생각보다 크기가 작은 움집을 보다 처음 놀라고 실제와 같은 사람모형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집은 대부분 땅이나 조개 더미를 30cm~100cm 정도 파고 지은 추위를 피하기에 적합한 반 지하 형태의 움집이었다. 이러한 움집에서 가족단위의 공동체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다음은 어로생활과 음식문화, 가족문화, 동구 사용, 농경문화, 수협활동, 혼례문화, 주거문화 등을 하나씩 훑어봤다. 선사시대의 의생활은 실을 뽑을 수 있는 방추차가 발명되면서 직물로 된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방추차는 흙을 빚어 가운데 구멍을 둟은 것으로 가늘고 긴 실을 뽑아 낼 수 있었다. 이를 이용해 실을 뽑아 만든 천과 동물의 뼈를 깎아 만든 뼈바늘을 사용하여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옥환을 비롯한 각종의 장신구들을 사용하였고, 어로생활은 정착지의 마을 부근에는 대개 강이나 바다가 있었고, 기후의 변화와 함께 찾아 온 풍부한 조개류와 물고기들은 인류가 정착생활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준거 같다. 이러한 방법으로 고기잡이, 농경과 목축 등 식량 획득의 방법이 늘고, 조리법과 저장법의 획기적인 발달로 사람들의 영양 상태가 좋아졌을 것이다. 가족은 핵가족 단위로 화덕 주위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고 잠을 잤으며, 토기를 빚으며 가정 생활을 꾸려 나갔을 것이다. 농경문화는 밭에다 불을 질러 나무와 풀이 타고 남은 재는 자연적인 거름이 되어 땅을 기름지게 만들어 주었다. 이곳에서 뿔이나 돌로 만든 괭이, 삽, 보습 등으로 간단히 나무 뿌리를 캐낸 다음 그 자리에 씨를 뿌려 농사를 지었고, 수렵 또한 사냥도구와 사냥법이 발전하면서 수렵은 삶을 영위하는 중요한 활동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리고 발걸음을 멈추고 전시관의 유리벽에 눈을 가까이 들이댔다. 유리벽에 좀 더 얼굴을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이 살아왔던 흔적을 조금이라도 가까이 느끼고 싶었다. 전시관 안에 마련해 놓은 움집 안에는 한 가족이 분주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매스컴에서 원시인들의 풍습을 담은 화면을 본 적이 있으나 삼양동 선사유적지 전시관에서 보는 원시생활 모습은 더욱 애틋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특히 내세를 믿고 죽은 자를 통해 공동체의 풍요를 빌기 위해 여러 사람을 함께 묻는 가족무덤이 인상적이다. 죽어서도 가족간의 끈끈한 정에 연연하는 그들의 풍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잠시동안 곰곰이 생각해 봤다. 더구나 넓은 농경지를 얻기 위해 나무를 베거나 집을 짓기 위해 목재를 가공하는 것은 지금 현대인들이 자기 땅과 부를 축척하기 위해 땅을 확장시키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양동 선사유적지는 1996년 제주시가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주거지 유구와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자 제주시가 이 일대 유적 발굴에 나서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사결과 검은 모래로 유명한 삼양해수욕장 뒤편 대지를 끼고 길게 연결되는 장타원의 유물 분포 범위가 나타났다. 3차에 걸친 발굴조사결과 삼양동 유적지에서는 모두 236기의 주거지가 확인 되었다. 또 소토 유구11기와 석축유구, 도로다짐 유구, 구상 유구, 폐기장, 패총 무덤 등이 확인 되었다.
특히, 인근 바다에서 조개류와 물고기들을 잡기 위해 칼 화살촉이나 조개껍질, 물고기 뼈들을 이용한 흔적도 나왔다. 또 수렵과 농경, 어로 등을 통해 얻은 음식물들을 화덕과 토기를 이용하여 익히고 저장하였던 식생활 문화는 현대인들의 식생활 문화와 일치하는 점이 많았다. 더구나 삼양동식 토기는 기본적으로 옹형이 크고 작은 적갈색 경질토기가 주류를 이루며 구연부가 적립하거나 외반도가 대체로 약하고 짧다. 석기와 토기 등을 보고 우리 선인들의 삶을 느끼는 순간이 되었다.
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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