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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태어나서
이 땅에 태어나서 이땅에태어나서
1. 줄거리
현대 그룹의 회장이었던 정주영은 1915년 11월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에서 태어났다. 한 집안의 장손으로서 아버지의 가업인 농사를 어려서부터 배운다. 하지만 아버지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너무나도 열심히 농사일을 하지만 하루하루가 살기 힘들 정도로 집안은 가난하였다. 정주영은 돈을 벌고자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몇 번 가출을 시도하였지만 번번히 아버지가 찾아 나서셔 다시 고향에 붙잡아 두셨다. 네번째 가출을 하였을 때, 서울에 도착한 정주영은 인천부두에서 막일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서울에서 쌀가게의 견승공이 되었다. 1년 월급으로 쌀 20가마를 받게 되니 아버지도 더 이상 아들을 고향에 붙잡아 두지 않았다. 쌀가게 2년만에 쌀가게 사장이 되어 고향 아버님께 논 2천평을 사드리고 장가도 들었다. 돈의 여유가 생긴 정주영은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게 되는데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 공장이다. 하지만 공장의 화재와 식민지하의 어려운 시국에 의해 이 사업에서 손을 뗀다. 광산 사업을 잠시 하다가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 정주영의 형제들이 다들 장가를 가고 부양해야 할 식구가 부쩍 늘게 되었다.
해방 직후 나라 안이 어수선할 때 정주영은 ‘현대자동차공업사’ 라는 간판을 걸고 자동차 수리 공장을 시작했다. ‘현대자동차공업사’가 현대라는 브랜드의 시작이 되었다. 자동차 공업사는 나날이 발전을 더하였지만 아버님은 결국 병환이 나셔서 돌아가신다. ‘현대자동차공업사’는 점차 작업범위를 늘어가게 되고 미군 부대에서의 건설업 수요가 늘어감에 따라 ‘현대토건사’ 간판을 더 달게 되었다. ‘현대건설’의 출발이 되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6.25전쟁이 발발하고 다행히 정주영의 가족은 무사하였고 건설사업도 미군 발주 공사를 훌륭히 해내어서 그 명성이 점차 높아갔다.
건설업이 호조를 보이는 중에도 고령교 공사에서 계약에서의 미숙함과 경험, 준비의 부족으로 큰 손해를 보았다. 하지만 고령교공사에서의 시련을 통해 정주영은 장비 부족을 해결하는데 힘을 쓰게 된다. 한강인도교 공사에서 ‘현대건설’은 건설계에서 두곽을 나타내며 대한민국의 선두기업의 면모를 보이게 된다. 고령교의 교훈으로 기계화와 장비화가 경쟁 업체들보다 앞섰기 때문이다. 건설업을 발전시키면서 시멘트 공장 설립하는 등 나날이 발전을 더해갔다.
[문서정보]
문서분량 : 4 Page
파일종류 : DOC 파일
자료제목 : 이 땅에 태어나서
파일이름 : 이 땅에 태어나서.doc
키워드 : 이,땅에,태어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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