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시경 Down
주시경
주시경선생의 생애와 업적에 관한 글입니다. 주시경
황해도 평산에서 가난한 선비의 아들로 태어나어려서 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우다가 13세 때 큰아버지의 양자가 되어 서울로 올라왔다. 본관은 상주(尙州). 아명은 상호(相鎬). 자는 경재(經宰), 호(일명이기도 함)는 학신(學愼)·한힌샘·일백천(一白泉)·백천(白泉)·한흰메·태백산(太白山)이다. 1894년 배재학당에 입학, 1898년 6월 역사지지특별과를 졸업하고 1900년 6월 보통과를 졸업했다. 배재학당시절 독립신문사에서 서재필의 언문조필로 있으면서 철자법을 통일할 목적으로 1896년 국문동식회를 신문사 안에 설립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07년 지석영이 만든 국어연구회의 회원으로 4개월간 활동했으며, 같은 해 7월 학부(지금의 교육부) 내의 국문연구소 주임위원으로 임명되어 3년 동안 국문연구안을 작성·제출·토의했다. 상동청년학원 안에 개설된 하기(夏期)국어강습소의 졸업생과 유지들을 규합하여 1908년 국어연구학회를 조직한 후 2년 동안 이끌었다. 국어연구학회는 1911년 조선언문회(배달말글몯음)로, 강습소는 조선어강습원으로 개칭되었다가 1913년 학회의 이름이 한글모로, 1914년 조선어강습원의 이름이 한글배곧으로 다시 바뀌었다. 이 단체들의 회장이자 강사로서 많은 제자들을 키워냈다. 1909년에는 J.S.게일, 다카하시[高橋亭] 등과 더불어 한어연구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이화학당·흥화학교·기호학교·융희학교·중앙학교·휘문의숙·배재학당 등에서 강의를 했으며, 상동교회 내의 상동청년학원과 여러 강습소를 중심으로 국어 강의를 전개했다. 1900년 상동사립학숙에 국어문법과를 부설하고 1907년 여름에 상동청년학원의 국어강습소, 같은 해 11월 같은 학원에 설치된 국어야학과, 1908~09년 국어강습소, 1910년 재령 나무리강습소 등의 많은 강습소를 통해 음학(音學)·자분학(字分學)·격분학(格分學)·도해학(圖解學)·변체학(變體學)·실용연습 등을 가르쳤다. 그에게서 직접·간접으로 배운 사람들은 김두봉·이규영·최현배·김윤경·권덕규·신명균·장지영·이필수·김원우·정열모·이윤재·이병기·김두종·백남규 등이다.
을사조약이 맺어지자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전에 국어 문법을확립하고 보급해야 함을 절실히 깨닫고 연구에 힘써 <국어 문전 음학>,<국어 문법> 등의 책을 발간하였다.
그 뒤에는 숙명여자 고등학교를 비롯하여 9개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광문회에서 <말모이(국어사전)>를 맡아 편찬하였으며, <말의 소리>를 저술하는등 국어 운동의 선구자로서 한글의 보호와 발전에 일생을바쳤다. 최현배 ·장지영 ·이병기 등의 제자를 길러냈으며,1922년에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마침내 <한글 맞춤법통일안> 이 제정되었다. 1980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이주어졌다.
주시경 선생은 이른 시기에 우리말 문법과 우리 글자에 대해 연구한 분입니다. 이 분의 이론은 매우 체계적이고 독창적인 이론으로서 이름이 높습니다. 주시경 선생은 또한 맞춤법 연구에도 관심을 기울여, 국문동식회를 설립하고 맞춤법을 정리하고자 애썼습니다.
[문서정보]
문서분량 : 4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주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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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주시경
자료No(pk) : 1612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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