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자교육의 전통과 서연(書筵) Down
태자교육의 전통과 서연(書筵)
태자교육의 정의와 그 방법인 서연제도에 대해 기술하나 리포트입니다. 1a태자교육의전통과서연書筵
1. 머리말
2. 태자교육의 전통과 유교이념
3. 서연제도의 성립과 그 성격
4. 맺음말지금까지 태자교육기관으로는 조선시대의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만을 주로 말해 왔으나, 태자교육을 담당하는 제도는 이미 고려시대에도 나타나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최언위(崔彦撝)를 태자사부(太子師傅)로 삼아 「문한지임(文翰之任)」을 맡겼다는 기사(『고려사』 「崔彦撝傳」)에서 이미 고려 건국 초기부터 태자교육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려 현종(顯宗) 13년(1022)에 태자를 세우고 사보(師保) 및 관속(官屬)을 두었고, 문종 22년(1068)에는 太師, 太傅, 太保 각1인(종1품), 少師, 少傅, 少保 각1인(종2품), 빈객(賓客) 4인(정3품) 이 밖에도 문종 22년(1068)에 정해진 동궁관(東宮官)의 당하관(堂下官) 정원과 품계로는 좌우서자(左右庶子) 각1인(정4품), 좌우유덕(左右諭德) 각1인(정4품), 시강학사(侍講學士) 시독학사(侍讀學士) 각1인(종4품) 등이다. 『고려사』 志 권제31 백관2 동궁관. 등을 세웠다. 여기서 보이는 「태자관속」이 태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임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 「서연」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명종(明宗) 때로, 『고려사』에 의하면, “서연의 여러 유생(儒生)들을 보문각(寶文閣)에 모아 「增續資治通鑑」을 원본과 대조하여 교정(讎校)케 하고...”(『고려사』 卷20 명종22/04/壬子;1192)라는 기사가 보이며, 이어 신종(神宗) 원년 3월에는 “元子가 처음으로 「서연」을 寶文閣에 열었다”(『고려사』 卷21, 신종元年/03/乙巳)는 기사가 보인다.
앞의 기사는 “서연에 소속되어있는 유생들”이라는 뜻으로 서연이 관청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며, 뒤의 기사는 보문각에서 서연이라는 교육활동이 시행되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한편 조선시대에 들어와 세자교육을 담당하는 부서로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은 고려시대의 태자관속과 마찬가지로 「세자관속」(世子官屬)이었다.
태조 1년(1392) 7월 관제를 새로 정할 때[官制新定]에 “「세자관속」을 설치하여 세자를 위한 강학(講學)과 시위(侍衛) 등의 일을 겸해 관장하고...”(태조 001 01/07/28丁未)라 하였는데, 이 세자관속이라는 용어는 그 후 사용되지 않은 채, 「서연」과 (세자)시강원이라는 표현이 주로 나타나고 있다.
조선시대 「서연」기사로는 정종 2년(1400)에 맹사성이 5개 조목을 상언하며 <전하가 동궁에 계실 때에 서연을 열어 『大學衍義』를 강론하였으니>(정종 006 02/11/13癸酉)라 하여 세자에 대한 교육활동으로서 「서연」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밖에도 <왕세자가 서연을 열다>(태종 035 18/06/20己亥), <왕세자가 비로소 서연을 열다>(세종 014 03/12/26乙卯), <서연관과 빈객의 사고시 서연의 절차에 대해 정하다>(세종 018 04/12/23乙巳) 등. 태종 5년(1405)에는 <육조(六曹)의 직무분담과 소속아문을 상정>(태종 009 05/03/01丙申)하여 세자에 대한 시강을 맡는 관청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조선 세조 10년(1464)의 <서연과 금루(禁漏)를 옮긴 일의 편부를 논의하여 아뢰게 하다>(세조 033 10/05/29辛巳)라는 기사는 궁중의 물시계를 예전에 서연이 열리던 곳으로 옮겼다는 뜻에서 서연이 ‘장소의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그러나 서연의 성격과 관련하여 13세기 후반 원(元)의 간섭을 받게 된 충렬왕(忠烈王) 원년(1275)에는 태자부(太子府) 고려 때 태자의 궁사(宮事), 시종(侍從), 진강(進講)의 일을 맡은 관아. 가 세자부(世子府)로 바뀌고 「태자」라는 용어도 제후국에서 사용되는 「세자」로 격하된 적이 있었다. 이 때 「서연」은 세자가 아닌 왕을 위한 교육제도로(『고려사』 백관지1, 寶文閣條), 그리고 세자교육은 세자부에서 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이 왕을 위한 「서연」이 다시 예전의 「경연」으로 개칭된 것은 고려말기 공양왕(恭讓王) 2년(1390)의 일이며(『고려사』 卷45 恭讓王02/01/丙子),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태조실록』(태조 001 총서)에 보이는 서연기사는 여전히 고려시대 임금에게 진강하는 의미의 「서연」이 섞여 쓰여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서정보]
문서분량 : 6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태자교육의 전통과 서연(書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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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태자교육의,전통과,서연,書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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