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리지 보고서
택리지
이중환의 택리지의 구성,특성을 분석하고 감상한 글입니다. 택리지
-이중환(李重煥)에 관하여
1690(숙종16)~1752(영조28). 조선후기의 실학자. 본관은 여주로 자는 휘조이고 호는 청담이다. 이익의 문인으로 실사구시 학풍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713년(숙종3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717년에 김천도찰방을 거쳐, 1722년(경종2)에 병조정랑이 되었다.
영조가 즉위하자 목호룡의 당여로 구금되어 1725년(영조1) 2월부터 4월까지 네 차례나 형을 받았고, 이듬해 12월에 섬으로 유배되었다. 그뒤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정한 거처도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살았다. 전라도와 평안도를 제외한 우리나라 전역을 두루 답사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당시 전국의 인심과 풍속 및 물화의 생산지·집산지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방면에 특히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관직에서 물러난 사대부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보자는 데 있었다. 그가 가장 좋은 곳을 선정하는 기본관점은 인심이 좋고, 산천이 좋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교류가 좋은 곳이었는데,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쓴 저서가 바로 《택리지》이다. 그는 당시의 정치와 경제 및 문화 등 각 방면에 주목할만한 많은 견해를 피력하여놓았다. 먼저 그의 신분관은 사대부와 농·공·상의 등분을 단순히 직업상의 차이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지배계급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의 경제관은 인간의 생산활동을 중시하여 결국 인간은 그들 스스로를 위한 생산활동에 의해서 의식을 해결하여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지리적 환경을 가장 잘 이용해야 된다는 것이 그의 기본적인 지론이요, 사상이었다.
가장 좋은 지리적 환경이란 땅이 기름진 곳이 제일이고, 배·수레와 사람 및 물자가 모여들어서 필요한 것을 서로 바꿀 수 있는 곳이 그 다음이라는 것이다. 수전(水田)의 벼 생산량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각 지방의 특수농작물에 대해서도 대단한 관심을 기울였다. 즉, 진안의 담배밭, 전주의 생강밭, 임천·한산의 모시밭, 안동·예안의 왕골밭이었는데, 부농들이 이것을 매점해서 이를 보는 자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문서정보]
문서분량 : 8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택리지
파일이름 : 택리지_2029689.hwp
키워드 : 택리지
자료No(pk) : 16119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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